한국인터넷뉴스영남협회 관리자 기자

올해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봄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처음 불길이 치솟았을 당시만 해도 한 지역의 재난으로 여겨졌지만,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은 산과 산을 넘고 행정 경계를 가리지 않으며 결국 안동, 의성, 청송, 영양, 영덕 등 5개 시·군으로 확산됐다. 검게 그을린 산자락과 잿빛으로 변한 들판은 이번 산불이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산불은 단순히 나무와 숲만 태우지 않았다. 삶의 터전을 지켜오던 주민들의 일상도 함께 삼켜버렸다. 한순간에 집을 잃은 이재민들은 체육관과 임시 대피소에서 낯선 밤을 보내야 했고, 평생 가꿔온 밭과 과수원을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을 삼켜야 했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는 재와 연기만 남았지만, 그 속에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감과 허탈함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무게였다.
재난은 늘 가장 평범한 일상을 살던 이들에게 가장 가혹하게 다가온다. “설마 여기까지 오겠나”라는 생각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대피 방송과 함께 주민들은 최소한의 짐만 챙긴 채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불안과 공포,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막막함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절망의 시간 속에서도 분명히 빛났던 장면들이 있었다. 불길이 확산되던 그 시간, 각 시·군의 공무원들은 책상 앞이 아닌 현장으로 향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진 비상근무, 연기 자욱한 산길과 마을을 오가며 주민 대피를 돕는 모습, 쉼 없이 울리는 무전기 소리 속에서 이들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안동에서는 산불 확산 경로를 예측하며 선제적 대피 조치가 이뤄졌고, 의성에서는 초기 진화와 함께 주민 안전 확보에 행정력이 총동원됐다. 청송과 영양, 영덕 역시 가용 인력을 최대한 투입해 현장을 지켰다. 도로 통제, 임시 대피소 운영, 이재민 지원, 피해 조사까지 공무원들의 하루는 24시간으로도 부족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당연한 의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헌신이었다.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며칠씩 현장을 지킨 이들도 있었고, 개인 가족의 안부를 뒤로한 채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전을 먼저 챙긴 이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공무원이니까 하는 일”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 현장을 지켜본 이들에게 그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재난 앞에서 행정은 종이 위의 매뉴얼이 아니라 사람의 손과 발로 움직인다. 그리고 이번 산불은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보여주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공무원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그분들이 먼저 와서 손을 잡아줬다”고 입을 모았다. 이 말 한마디에는 고마움과 신뢰,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
물론 산불이 남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복구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도 결코 평탄하지 않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곁에서 함께 울고 함께 땀 흘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이재민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심과 따뜻한 연대다. 행정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 사회 역시 이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피해 복구와 지원이 형식에 그치지 않도록, 그리고 다시는 같은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끝으로, 이번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고 큰 상처를 입은 이재민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불길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불길보다 오래 그 자리를 지킨 안동·의성·청송·영양·영덕의 모든 공무원 여러분께 진심 어린 감사와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여러분이 있었기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고, 여러분이 있었기에 이 지역은 다시 일어설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이름 없이, 조용히, 그러나 누구보다 단단하게 공동체를 지켜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 봄의 아픔을 넘어, 서로를 지켜낸 이 기억이 오래도록 남기를 바란다.






















